#엄마. 아들이 쓰는 것 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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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 수 있어요.

#엄마. 아들이 쓰는 것 잘 보고, 따라서 써 보세요!#
지난 설날에 고향 갔을 때, 은행에서 받은 커다란 벽걸이 달력 두개를 펼쳐서 뒷면에다가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한글 자음을 써 내려 갔어요
# 기역(ㄱ)은 옆으로 작대기 짧게 긋고 다시 밑으로 꺾어서 내리고, 니은(ㄴ)은 작대기를 밑으로 내리고 그대로 꺾어서 엎으로 그으주면 돼요. 숫자 1은 아래로 작대기 긋듯이 쭉 내리고, 7은 낫 모양처럼 꺾어주고, 8은 동그라미 두개를 아래 위로 붙혀서 눈사람처럼 만들어 주고, 10은 작대기 하나 옆에 동그라미 하나 붙혀 줘요.
원칙도 없고, 방법도 엉밍진창인 수업(^^)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이번 추석에 고향 가니까, 어머니께서 달력 수십장에 1부터 10까지, 자음. 모음을 썼다는 표현보다는 제가 적어 드린 것을 보고, 어설프게 그린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어요.
#봐라. 내가 이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연습한거다. 잘 썼냐?#
돈의 액수와 거스름돈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는 아시지만, 숫자 1이 어떤 것이며. 자음 #ㄱ#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셨어요.
사실 어머니께서는 초등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문맹이시거든요.
어머니께서 글자와 숫자를 배워 학교를 가실 것도, 책을 읽으실 것도, 일기를 쓰실 것도 아니지안, 그저 당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쓰고 싶다는 그 소박하고 간절한 소망을 이뤄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많은 연습을 해서 이제는 고귀한 당신 이름 석자와 슷자까지는 어렵게 쓸 수 있으시다네요.
당신이 못 배운 한(恨)을 대물림 하지 않으시려고, 자식들에게는 배울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배우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돋보기 안경을 끼시고, 핏기없는 주름진 손으로 삐뚤삐뚤 밤새 달력에다 쓰고 또 쓰신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니, 먹먹해지더라구요.
당신의 실력을 자랑하시던 어머니의 환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요.
세상살이가 특별하거나 고차원적인 지식이 없어도 전혀 문제없고, 삶의 지혜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더 많은데, 우리는 너무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더라구요.
부모님을 제대로 모신다는 것, 자식된 도리를 한다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너무 쉽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
이 온전한 육신을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보답해야 하는 까닭이겠지요.
이 세상 떠나시기 전에 자식들 이름은 꼭 써 보고 싶다고 하시길래, 금쪽같은 자식들 이름을 한명 한명 크게 적어 드리고, #엄마. 할 수 있어요# 하는데, 눈시울이 붉어져서 말을 멈추고, 어머니의 가녀린 몸을 꼬옥 안아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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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루
스잔나
시흥시 신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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