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

이미지

프로필

이안셀모
이안셀모
서초구 반포1동
매너온도
36.8°C
명시감상2 <별 헤는 밤>

■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
***********************************
시인. 독립운동가 1917. 12. 30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지금의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 지산진) 출생.
평양 숭실중학교를 다니다가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 부로 폐교 당하자 용정(龍井)으로 돌아가 광명중학교 4학년에 편 입했으며, 1934년 천주교 만주·연길 교구에서 창간한 용정본당 (龍井本堂) 탈시오소년회에서 발행하던 <탈시오회지>가〈가톨 릭소년>으로 이름이 바꾸고 연길교구의 어린이잡지로 만들었는데( 발행인은 아펠만(Appelmann) 신부, 주간은 김구정(金九鼎), 평론가 서상렬, 화가 구본웅, 교육자 장내원 등이 편집에 참여했다.

(이후 일본에서 만든 <빛>이란 어린이 잡지를 무료로 배포함에 - <가톨릭소년>을 견제하기 위해- 따라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고, 일본을 선전하는 글을 실으라는 등의 일제의 압력과 탄압과 1940년에 폐간 된다.)
1936년 윤동주 시인은, 尹童柱라는 필명으로 <가톨릭소년>지에 동시 <병아리>를 발표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일본 입교대(立敎大) 입학 후 동지사(同志社)대학 영문학과 전학중 방학을 맞아 귀국 하려던 중 사상불온, 독립운동, 비일본시민, 서구사상 농후 등의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체포 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구금됨. 이는 1943년 한국 학생 대표들이 중국 장개석(張介石) 총통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가던 도중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는데,(이 사건은 조선 독립을 도와 달라는 탄원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일경(日警)은 한국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고, 특히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은 무조건 잡아갔다. 이에 공부밖에 모르는 윤동주 시인이 여기에 휘말린 것이라 한다.

감옥에 수감중 광복을 6개월 앞두고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원인불명 사안으로 옥사하였다.(생체실험 마르타가 되어 사망했다는 미확인 주장도 있다.)
당시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룬 후 간도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혔다.
1948년 1월,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월간문학사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1990년 8월 15일에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저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유고시집(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림)
********************************
9월이다. 이제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태풍과 폭우로 농심과 어심이 타고 있으며 물가가 우리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도 가을이면 손에 책 한권은 들고 여유로움을 갖어보는 차원에서 우리민족의 암흑기에 우리들 가슴에 별이 된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학창 시절 누구나 좋아하고 음미했던 작품이며..또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 <서시> 전문 - 이 작품 못지않게 인구에 회자하는 작품이다.

윤동주 시인이 직접 기록한 작품 연보에 따르면, 고향인 용정(龍井)을 떠나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다니던 1941년 11월 5일에 씌어진 작품으로. 공간적 배경으로는 떠나온 고향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이며 시간적 배경은 가을밤이다.

윤 시인은 쓸쓸하고 고적한 가을밤에 별을 헤아리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이미지는 '별'이다.
별은 언제나 우리에게 순수나 동경, 이상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현실은 식민지적 상황으로 인한 실향의 세계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현실을 절감하면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운 내 이름자를 <흙으로 덮어 버리>고 그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의 고뇌에 찬 자아성찰이 부끄러움의 정서를 통하여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형식적 특징으로는 5연의 산문율을 들 수 있다.

짧게 이어지던 시행이 갑자기 이 부분에 이르러 산문형식으로 바뀌는 것은 차분하던 시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짐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추억이 시인의 기억 속에서 주마등같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작자의 의도 된 구성으로 보여진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보면 27세의 짧은 나이로 옥사한 그는 참으로 여한이 많은 일생을 산 인물이다. 생존시에 <시인> 이라 불리지도 못했고, 그 당시 20대가 가정을 꾸리던 장가를 한 번도 못 가 보았다 한다. 또한 교류가 없어 같이 활동하던 동인도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윤동주 시인의 맑디맑은 정신은 유학을 위해 잠시나마 창씨개명을 한 것을 무척이나 후회하며 지냈고, 훗날 <참회록>이란 작품에서 자신의 심경을 잘 나타나고 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참회록 중에서

2009년 7월11일 서울시는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인왕산자락 청운공원에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이곳에 <서시>를 비롯한 시비를 건립하였다.

이곳에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이 가을을 즐기는 연인들은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시절 거닐면서 시상을 떠올렸던 이 길을 말이다.

감옥에서 생체실험으로 독약 주사를 맞으며 실험용 마르타가 되어가던 윤동주 시인의 육신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대시인 되어 비로소 죽어서 우리들의 가슴에 별이 된 시인으로 돌아 온 것이다.

가을에 파란 하늘에서 그의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이제는 우리들 가슴에 빛나는 별이 된 시인을 그래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자. 오늘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 조회 7

댓글 0


지금 당근 앱을 다운로드하고
따뜻한 동네생활을 경험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