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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아마 이른 가을이었을꺼야. 우리들은 테라스에 앉았지~~
전생이 아무래도 한량이었을거라 의심되는 친구녀석이 간만에 점심이나 먹자며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밤 불금의 숙취로 혼미해진 정신을 깨어보려 창문을 연 채 차를 몰아 영동대교를 건너려니 때마침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마 늦은 여름이였을거야. 우리들은 호숫가에 앉았지.~~둥두루 둥둥~~”김창완의 보컬은 늘 그렇듯 소년의 외로움같은 정서가 아련하게 묻어난다. 3형제밴드 특유의 싸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에코우가 많이 섞인 촌스러운 소리라서 그런지 언제 들어도 정겹다. 9월의 첫 주말이니 이제 겨우 8월이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도 강을 건너며 느끼는 건조해진 바람의 정취는 온전한 가을의 맛이 난다. 이 아침 느끼는 계절감은 ‘아마 늦은 여름’이 아니다. 마침내 이른 오롯한 가을이다.
((아마 이른 가을이었을꺼야. 우리들은 테라스에 앉았지~~)) 골목 어귀 카페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과년한(?) 남자 둘이서 아라비아따파스타를 시키려니 어느새 이심전심 낫 술이라도 한 잔 곁들이자는 심파시가 작동한다. 간 밤 숙취의 흔적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Pink Martini의 ‘Splendor in The Grass’에서 챠이코프스키 1번 교향곡이 광휘롭게 울려퍼지는 타이밍에 우리는 눈을 번쩍이며. ‘가을이니 네비올로Nebiolo를! “2005년 빈티지, Barbaresco, Bruno Rocca?” “콜!” 손발이 척척맞는다. 순간, 작은 카페의 소믈리에은 한가한 점심 매출에 푸른불이라도 켜진 듯 사람대하는 눈빛도 달라지고, 약간의 선망과 눈총을 동시에 받으며 이상한 아저씨들의 한 낫 술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왠 낫술이냐구?? 그냥~~! 가을이쟎아! 그리고,이 가을날에 흘러나오는 죽이는 노래 때문이쟎아~. 왜 비싼 와인이냐구? 그건 나도 모르지, 그냥 팔자좋은 친구가 사는 공술이니 기분좋게 마셔줄밖에!!
가을이오면 이태리와인이 가슴으로부터 먼저 땡긴다. 더 가을이 깊어져 기온이 내려가면 부르고뉴의 피노누아를, 그 보다 더 추운 겨울이 오면 론Rhone 와인을 주로 마시는게 우리 같은 골수들의 와인선택법이다.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긴하다. 기온과 온도, 습기등이 와인의 저마다의 와인물성을 깨우는게 다르기때문이다. 덥고 습한 여름날에는 갈증과 수분부족의 본능적인 욕구로 ‘이 날씨에 무슨 얼어죽을~ 레드 와인!’하며, 얼음을 가뜩 채운 칠러에 스파클링와인만을 애오라지 달고살았으니, 날이 선선해져 어서빨리 레드와인을 마시길 얼마나 고대하였던가! 그러니 이 계절, 공기 중의 습도가 가시고 온도가 좋으니 아로마가 풍성하고 탄닌이 섹시한 이태리와인을 고를 수 밖에... 이태리북부의 안개 낀 피에몬테의 심한 일교차가 만들어낸 네비올로품종의 와인은 매혹적인 아로마와 탄탄한 구조감, 파워풀한 타닌을 특징으로한다. 섬세한 타닌의 결은 혀의 감각을 여러겹으로 조여줘 수렴시키는 관능미가 있다. 특유의 타르향과 장미향, 꼬리한 버섯향과 흙내음, 그리고 커피나 초콜릿향이 살짝 섞인 질펀한 아로마의 부케, 향의 꽃다발은 화려한 여왕폐하의 등장을 알린다. 흔히 이태리 와인에서는 ‘왕의 와인 바롤로 barlo, 여왕의 와인 barbaresco’라 불리우는데, 초가을은 바르바레스코여왕을, 완연한 겨울은 좀 더 진한 바롤로왕를 알현할지어다. 찬 바람에 새벽녁 솜이불을 끌어당기게되는 이 계절, 와인애호가들이여! 와인의 시즌이 도래하였도다! 어서 빨리 진공관 오디오에 불을 지피고, 잔에 그득히 와인을 따라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춤을추며 와인의 계절을 맞이하자!

*이 글은 몇년 전 10월 남성 패션지 10월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가을바람이 부니~ 생각이나서 공유합니다.

사가정역4번 출구. Bistro사가정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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