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뢰는 기억을 기반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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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파
이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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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꿈꿀 수 없는 공포

모든 신뢰는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뇌졸증이 발병한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사회생활에 자신이 없습니다. 섬망증상과 여러 휴유증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섬망을 건망증과 비슷하게 여기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나 섬망은 노망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증상입니다.
섬망을 체험한 제가 가감없이 표현한다면 현실이 삭제가 되기에 미래는 꿈꿀 수 조차 없는 공포를 느낍니다.
"나는 망했다. 이젠 끝이다. 인간으로써 가치가 없다." 하는 절망들이 눈을 뜨면 내게 인사합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기에 모든 사람이 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저에게 화를 내고 갖가지 감정들을 토해냅니다. 그 때, 제가 느끼는 감정은 우겨쌈이고 세상이 나를 소외시키는 것으로 느낍니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잘 들어보면 그들에게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섬망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성격이 변합니다. 온순했던 사람도 화가 많아지고 다급해지며 마치 야생짐승이 된 듯 모든 것을 의심하고 으르렁거립니다. 가까웠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병원에서도 골치아픈 환자가 됩니다.

신의 배려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지만 얌전한 싸이코패스(아스퍼거증후군)인 저는 감정을 제외하고서 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니 제게 문제가 있음을 빠르게 인정했고 잡고있던 저의 과거와 현실을 놓아주었습니다. 담당하는 의사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나에 대해 알 수 없다. 그렇게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새로 생긴 지인 중에 중뇌가 손상되어 루게릭병을 갖게 된 형이 있습니다. 이 형도 저를 알아서 좋다고 하지만 저 역시도 이 형을 알게 되어 좋습니다. 마비가 되어 그 자리에서 똥오줌을 꿀떡거리며 눈물과 함께 토해낸 경험을 공유공감하는 사이입니다.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뇌가 아픈 것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형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이해하려고 열린 마음으로 봐주기는 하지만 각자가 용납할 수 있는 선이 있고 우리는 그 선을 자주 넘깁니다.
그래도 우리 서로는 그 이해의 선을 넘겨도 괜찮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자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않을 사람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최근에 30년을 친하게 지낸 친구가 저에게 크게 실망했다며 갖가지 불만을 제게 털어놓았었습니다. 이 친구 역시 제가 놓아주어야 할 대상인 것 같습니다. 이 친구에게 계속 이해해 달라며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고있었습니다. 많은 시간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지만 이별을 해야할 때가 온 듯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당근동네모임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고 하는 모임입니다. 이런 관계성도 좋습니다. 모임원 중에는 좀 더 친한 관계로 발전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거부하였습니다. 섭섭하게 느낄테지만 관계의 미래가 파멸이 될 것이 눈에 보이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이해해 달라며 저의 버거운 것들을 그들에게 맞길 수는 없습니다. 저를 낳아준 부모조차 버거운 것을 누구에게 맞길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 최상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미래는 당근의 단기알바입니다.
자주 뇌를 쉬어주어야 하는 저는... 현재로선 정상적인 일터에서의 근무는 불가능합니다.
가끔씩 기절도 하고 쇼크로 마비가 생기기도 하는 저에게는 직장은 먼미래의 꿈과 같습니다. 하지만 단기알바는 가능할 듯 합니다.

최근 루게릭형을 보고 용기를 내어 3일간 일을 했었습니다. 폭염에 돈을 번 만큼 음료와 식대로 써버려서 실익은 없었지만 3일을 일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습니다. 남은 것은 땀띠뿐이지만 제겐 훈장 같았습니다.
하루 몇만원의 수익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이면 될듯 합니다.

아직 내게는 1년 8개월의 시간이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공포가 나를 감싸안았지만 나는 잠식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노래처럼...
비록 시작은 비루했지만 나는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카피츄의 "그냥 웃지요"
저에게 꼭 맞는 이 노래처럼 저의 미래도 그런 것이 있을 듯 싶습니다.

그렇게 희망과 살포시 손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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