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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학문의 최고봉은 언어다 >

( 코로나 시대♡실직시기의 단상)
삼성전자서비스 고객상담. 간신히 구직은 했으나 단기 3개월짜리란다.  그럼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또 구직을 해야하는 처지다.  채용사이트를 펼쳤다.  자, 이번엔 영어라는 기술을 매개로 접근지를 정하자.  외국인을 상대하는 마을.  영어가 필요한 마을.  용산의 평택이전? 그럼 평택의 험프리부대로 떠볼까?  음~쫌 멀군.  수원근방으로 땡겨보자.  미공군부대인 송탄? 
오~ 1시간거리군.  좋아쓰!  그러나 부대안 구인광고는 거의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 써버(server)자리였다.  기초영어 기능한 사람 구인.  난 통역사이고 50대인데 과연 저들이 써줄까?  분명 나이때문에 주방으로 밀어넣겠지.  그럼 영어는 입속으로 꾸겨넣어야하는 부뚜막 신세?  덴장!  써버??  2, 30대가 뛰기에 딱 좋은 자리군.  반짝반짝 빛나는 나이.  뭔가 알듯말듯한 나이.  세상에의 호기심때문에 방방 뛰어다니는 나이.  내게도 그런 천방지축의 20대가 있었고 그것은 10대부터 준비해온 언어작업 덕분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실패의 고배로 꺽꺽대기도 전에 난 그만 국가고시에 철썩!  합격하고 말았다.  그땐 그게 고시인줄도 몰랐다.  그저 신문하단에 커다랗게 난 공고를 보고 응시했을 뿐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영어와 일어. 각각 50명을 모집함.  대한민국의 해외여행 개방화에 부응하는 통역양성 과정인고로 많은 지원바람.  단, 만18세 이상 30세 이하에 한함.'  난 덜컥 지원서를 날렸다.  그제까지 영어를 한마디도 뱉어본적은 없으나 내 귀는 360도 열려있었고 영어고막이 이미 뚫린 상태였다.  그 경험은 88년 서울 올림픽때, 그러니까 고1때로 기억한다.  토요일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이태원의 웬디즈라는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마침 빈자리인 중간테이블에 앉아 밀크쉐이크를 마시는 중이었다.  주변엔 동서남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금발이 범람해댔고 그들은 올림픽 방문자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밀크쉐이크를 한모금 들이키는 순간, 웅성대는 소음사이로 대화내용이 동시다발적으로 귀에 꽂혔다.  이상했다.  솰라솰라해대는 소음은 더이상 찰나에 흩어지고마는 음성어가 아닌, 일련의 정렬을 갖춘 내용으로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당황했다.  마치 저들의 비밀을 귀동냥하는 스파이마냥 내 귀는 척척, 우리를 에워싼 동서남북의 수다를 실어날랐고, 나의 뇌는 그것을 즉각즉각 해석해대고 있었다.  이런걸 언어적 물꼬가 터졌다고 하나?  참으로 기이한 체험이었다. 

당시까지, 초등학교 5학년부터 6년간 나는 매일 2시간씩 영어 통문장을 읽고는 혼자서 주절댔었다.  잠시 신생 한국어의 창조를 꿈꾸다가 옥편없이는 해석불능인 한자투성이 신문이며 아버지의 동창회 월간지에 한계를 느껴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였다.  당시에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읽다가 제목때문에 짜증이 극에 달했다.  꽃아! 는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하지?  꼳아?  꼬사?  꼬차?  문법적 대입이 안되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버렸다.  주어진 틀안에서 꿈틀대는 국어와의 씨름일랑 관두고 무한한 확장성이 재미난 영어로 선회하자.  그렇게 영어는 국어의 한계로 갈증난 나에게 시원한 언어적 해갈을 안겨주었고 차후 30년간 튼튼한 밥통이 되어주었다.

근래들어 유투브에서 아주 인상적인 두 사람을 발견했다.  한명은 소설 파친코를 쓴 예일대 법대출신 작가 이민진이고 다른 한명은 하버드법대 종신교수인 석지영씨다.  두사람은 미취학때 이민한 재미교포인지라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  그러나 이민가정의 2세대로서 그들은 미국 주류사회의 리더로서 자리잡았고 그 이면엔 영어라는 언어를 마스터한 힘이 작용한다.  미국이민 가정의 꿈은 동일하다.  교육을 통한 차세대의 주류사회 입성과 동시에 부모세대를 능가하는 계층 업그레이드.  그것을 달성하기위한 전공으로서 한국부모는 단연 의대, 법대를 추종한다.  그럼 여기 두 사람을 비교해보자.  초등학교 6년동안 영어라는 언어를 마스터해서 나머지 6년은 그것을 사용해서 타과목들을 섭취했으리라.  그들의 영어강연을 모조리 듣고 비교해보니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와닿았다.  법학 전문가인 석지영교수의 언어적 정형성과 작가 이민진의 언어적 확장성이 보여주는 완연한 대비.  교육이민의 정형체인 그들을 비교하면서 학교 교육의 정점은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학교는 교육과정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학문적 도전을 의학, 법학으로 한정시키는데 나는 정작 인간교육의 최고봉은 문학이라고 본다.  의학은 인간의 몸을 다루는 기술용어에 치우쳐있고 법학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이성언어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문학은 기술언어, 이성언어를 모두 아우르고도 영혼까지 뒤흔드는 감정언어로서 인간의 마음을 제멋대로 변주시킨다.  그래서 인간교육의 귀결로선 최고봉이 아닐까싶다.

유투버들은 자랑한다.  외국어를 다섯개하네 열개하네. 
그러나 언어의 핵심은 숫자가 아닌 뿌리에 있다.  모국어 하나를 제대로 통달하면 어떠한 외국어든지 단어확장만으로 가지를 펼쳐나갈수 있다.  이민진 작가의 강연은 상당히 반가운 놀라움이다.  그녀는 단어의 재사용을 최소화한다.  마치 내가 6학년때 꿈꾸던 신생어의 창작자인양 무한한 단어를 끊임없이 끌어다쓴다.  이 점은 알랭드보통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모이면 예술이 된다는걸 그들을 통해 확인한다.  나의 언어적 기술.  단련을 통해서만 예술로 승화될수 있음을 이들 언어마스터들을 통해 배우는 중이다.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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