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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묘 가는 길

아침 일찍 일어나 성묘 갈 준비로 부산하다.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기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구정,추석 명절 차례를 거른 적이 없다. 집사람은 4대가 함께 살던 장손의 아내로써 우리가 도미할때까지 명절 차례를 꼭 준비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10여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미국에서도 빠짐없이 명절 차례를 지냈다. 한번도 싫은 내색 없이 혼자서 차례를 준비 해 준 집사람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많은 것들이 바뀌어서 귀국 초기 일년 동안은 이방인처럼 새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이들 중 차례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만나는 지인,친구 및 친척 중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대신에 가족,친지들이 산소에 모여서 소풍겸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그동안 차례 준비를 할 때마다 늘 집사람에게 미안했기에 올해부터는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당초에는 사촌 형제들과 구정 전에 산소에서 다함께 모이기로 하였으나 몇몇의 개인 사정과 얼마전 장손인 내가 안과 수술을 받아서 날씨가 좀 풀리는 3월 중에 하기로 했다. 그동안 집에서 지내오던 구정 차례를 산소에서 모시기로한 첫 해부터 약속을 못 지킨 아쉬움 때문에 우리 부부만이라도 오늘 산소를 다녀 오기로 하였다. 3시간 가량의 운전 끝에 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옛날 어릴적 뛰어놀던 그 시절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높게만 느껴졌던 뒷산은 조그만한 언덕에 불과하고 자갈 투성이던 시골길은 산뜻한 아스팔트길로 바뀌었으며 동네의 정겹던 초가집들은 사라지고 대신에 덤성덤성 양옥집들이 들어서 있다. 봄이면 뒷산에 올라 철쭉꽃을 따 먹고,여름이면 냇가에서 목욕을 하며 물고기도 잡고,가을이면 잘익어 바닦에 떨어진 알밤들을 줍고,겨울이 오면 감나무 꼭대기에 남겨둔 까치밥 홍시를 따먹으며 놀았다. 봄이면 엄마가 밭에서 묘종을 심을때 땅 두더지를 잡겠다고 온 밭을 훼집어 놓고,여름이면 아버지따라 논에 들어가 미꾸라지와 방개를 잡는다고 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가 일쑤였다. 가을이면 아버지 몰래 감나무에 올라가서 홍시를 따다가 떨어져 혼나기도 하고,겨울이면 남의 집 곳감을 친구들하고 훔쳐먹고 돌아오는 길에 버린 곶감꽂이 때문에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났던 일 등등 모두가 기억에 새롭다. 고향 마을 어귀를 돌아 도착한 가족묘에는 잘 착상된 마른 잔듸위에 낙옆들만 바람에 뒹굴고 있다. 양지 바른 자리라 그런지 지난해 산소 테두리에 심어놓은 연산홍과 반송들에 파란 새싹들이 움터 나오고 있다. 할머니,부모님 그리고 작은 아버지 묘를 작년 봄에 한군데로 모아 가족묘로 만들었다. 격동기에 태어나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살아 오신 이 분들에게 단촐하지만 상을 차려 인사를 드렸다. 나도 어느날 여기에 한자리를 차지 할 것이라 생각을하니 삶의 무상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내가 먼저 죽어 이곳에 오면 당신도 죽은 다음 내 곁으로 오겠지?” 시할머니,시부모까지 모시고 사느라 늘 고생했던 집사람에게 또 한번 더 미안하다. 2024.02.15 경북 상주에서 서 정원

조회 105
댓글 정렬
  • 제기동·

    노년이 되면 누구냐 장남들은 더욱더 느끼게 되네요 건강하세요

    • 전농동·

      명성상사 사장님을 자주 만나내요. 장남이신가 봐요. 우리가 마지막 세대 인 것 같습니다.

    • 제기동·

      장남입니다 배봉산근처에서 20년간 살아왔고 답답하면 용문산으로 산책다녀오고 John님과 동질감을 느끼네요 하하하하

    • 전농동·

      그렇군요.저는 어제 성묘 끝나고 오늘은 속리산 법주사 길을 걷고 있답니다. 서울 올라가면 언제 차나 한잔 합시다.^^

    • 제기동·

      넵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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