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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캔디 두 개

어제였어요. 책방 문을 열고 이번 낭독&필사 모임에서 할 것을 혼자 연습을 했습니다. 이벤트 특별 선물로 줄 노트를 한 권 개봉한 다음 내 이름을 쓰고 인간의 대지 저자 서문을 필사했습니다.
아깝지만, 이번에는 나에게도 한 권 선물하기로 했어요. 역시 선물은 좋아요. 내가 나에게 주는 기쁨도 좋습니다.
혼자 낭독도 조금 했어요. 새롭네요. 산골 소녀 일기장을 낭독하는 "꿈책방" 유튜브를 쉰 지 일 년이 넘었거든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에서 나온 일력에 있는 문장 필사하기도 책방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필수의식이 되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문장이 실렸네요.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
깃털 펜에 잉크를 찍어 옮겨 썼어요. 문장을 읽고 드는 생각도 썼답니다.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을 때 몰래 혼자 뭔가를 하는 재미가 꿀 같다. 꿀단지의 꿀을 한 숟가락 퍼먹는 것처럼 일을 만들어가며 즐기고 싶다. 소꿉놀이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에서, 나의 공간에서.”

벌써 22개가 쌓였네요. 노란 집게에 꼭 찝힌 노란 종이가 차곡차곡 쌓여 가겠지요. 남은 노란색과 지나간 노란색 양쪽의 두께가 같아지다가 역전되는 날이 오겠죠.

혼자 이러고 놀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요. 지난번에 오신 손님이 언니가 사간 책을 사겠다고 주문해주신 분이었어요. 책도 찾고 저를 보러 오신다는 문자였어요. 당연히 반가운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냈어요. “물 끓여놓고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답장을 보내며 갑자기 웃음이 났어요.

헨젤과 그레텔 동화가 생각났거든요. 숲속에서 길을 잃은 남매가 빵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노파는 아이들이 살이 찌면 잡아먹는 마귀할멈이었어요. 헨젤은 우리에 가두고 그레텔은 하녀로 삼았어요. 그레텔의 지혜로 마귀할멈은 죽고 남매는 보물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 있잖아요.

물을 끓여놓고 기다린다는 답장에서 헨젤을 끓일 준비를 하는 장면이 뜬금없이 생각났지 뭐예요. 잘 작동하지 않는 상상력이 웬일인지 나사가 풀린 것처럼요. “감사합니다”라는 귀여운 이모티콘 답장을 보고 다시 한번 웃음기가 발동했답니다.

기다렸던 손님은 들어오시자마자 제 손을 잡아주셨어요. 얼떨결에 같이 손을 잡았어요. 저는 컵을 씻어 차가운 손이었고 손님은 밖에서 오신 차가운 손이었지만 마음을 녹여주는 고마운 손이었어요. 지난번에 사가신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을 읽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시면서요.
“딱 일주일 만에 왔네요.”
“녜.”
“인스타에 올린 글 잘 읽었어요. 읽다 보니 내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예쁘게 잘 써줘서 고마워요. 친구를 만나 책방 이야기도 하고 이 글도 보여 줬어요.”
기억의 숲 이야기 #70에 손님 이야기를 썼었거든요.

가끔 꾸벅꾸벅 졸며 쓰다가 ‘왜 나는 책방 일기를 쓰고 있지? 왜 많은 시간을 여기에 쏟는 거지? 다른 할 일도 많은데. 쓰는 건 좋은데 왜 여러 SNS에 올린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종종 했는데 용기를 북돋아 주셨어요.
갑자기 보람을 느끼며 신났답니다. ‘누군가는 내가 쓴 긴 글을 잘 읽어주시고 기쁨이 되기도 하구나.’
그 마음으로 오늘도 쓰고 있답니다.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지요. 여러 가지 일이 많은 2월이 지나면 모임도 참석하시겠다며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계산하고 일어나셨어요.

서서히 일어서시는데 윤동주 시 한 편을 필사하시라고 권했어요.
“글씨를 안 쓴지 오래라. 참, 그저께 택배 보낼 때 썼네.”
“맞아요. 은행가면 쓴다고 하더라고요.”
“글씨 쓸 일이 없으니까 점점 못쓰겠더라고요.”
손님은 “바람이 불어” 시를 연필로 써 내려가시는데 완전 자유자재로 쓰는 멋진 필체였어요. 캘리그라피 글씨체를 해도 손색없겠어요.

손님은 가시면서 제 손을 잡아주시며 또 놀러 오시겠다고 하고 목캔디 두 개를 건네고 떠나셨어요. 남기고간 시와 커피잔, 캔디 사진을 잊지 않고 찍었어요.

캔디 하나를 입에 넣었죠. 시원한 맛이 코끝으로 전해왔습니다.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내주셨지만 마치 좋아하는 캔디를 일부러 넣어오신 것 같았어요. 아마도요.

저는 시를 소리 내어 읽었어요.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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