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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구의 증명 감상평

우연한 계기로 구의 증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군대에서 였으니 거의 5년 이상 시간이 흐른 뒤이다. 나는 이 책의 첫 회독에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떠올렸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집에 가압딱지가 붙고 빚쟁이들에게 몰리던 과거. 누군가에게는, 특히 그 누군가의 아내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순간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순간을 돌아볼 때 힘들었던 불행만을 떠올리시지 않았다. 당신의 남편이 옆에 누워있는 모습을 볼 때 미움이 아닌 연민의 감정을 느끼셨다. 불행까지 나누신 담이 원하던 사랑의 방식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부모님께서는 그 순간들을 이겨내셨고 이제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셨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으며 불행까지 나누는 사랑에는 공감했지만 불행으로 뒤덮힌 회색 사랑의 결말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이 책의 결말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구와 담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서술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혼동을 유발한다. 비록 책 상단에 구와 담 중 누구의 시점인지를 표시해둔 원이 있지만 이 원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원이 누구를 뜻하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책을 조금 읽다보면 이 표시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알고 있음에도 나는 이 내용의 누구의 시점인지 놓치곤 하였다. 단지 집중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변명일 수 있겠으나 마치 한 사람이 서술한 글과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오랜 사랑을 나누며 하나가 되었다. 담이가 구를 먹는다는 것은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으나 나에게 이 순간은 하나의 비유로서 둘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마침표와 같이 느껴졌다. 불행을 넘어 비극에 가까운 순간에서도 담은 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였다. 인간으로서 '구'를 먹는다는 뒤틀린 사랑의 행위를 통해 완결시켰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음에도 '같이 죽음을 맞이하고 이야기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구를 증명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한 번 재밌게 읽은 책은 다시 읽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책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책이라도 다회독은 중요한 순간이다. 같은 책의 같은 문장을 보더라도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전해준다. '모든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로 태어나서 한 명의 사람으로 죽는다' -Martin Heidegger

조회 75
댓글 정렬
  • 용호동·

    저도 한번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듭니다 내용을 잘 간추려 주신듯요

당근에서 가까운 이웃과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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