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종 5lp. 일괄은 2.0만 2.NOLANS –SEXY MUSIC. 0.6만 커버 양호 알판 사용감 적음EX+ 한국발매 https://www.youtube.com/watch?v=_thxVdegF1A The Nolans - Sexy Music https://www.youtube.com/watch?v=iu7w6TUT414 The Nolans - Who's Gonna Rock You 3.CLAUJA BARRY. 0.6만 BOOGIE WOOGIE DANCING SHOES 커버 양호 알판 사용감 적음EX EX+ 한국발매 https://www.youtube.com/watch?v=pF6tkHPgbZg CLAUDJA BARRY Boogie Woogie Dancin’ Shoes https://www.youtube.com/watch?v=3l4HVRNZPTU Boogie Tonight 4. JOY. 0.6만 커버 매우 양호 알판 사용감 거의 없음NM 속지 있음 한국발매 https://www.youtube.com/watch?v=zSjTw9GaCXU Joy - She's Dancing Alone https://www.youtube.com/watch?v=BoBzBw4-lHg Living On An Island 5. 존 트라볼타 –FEVER 2LP. 0.8만 커버 양호 알판 사용감 거의 없음 EX+ 브로마이드 내장 미국 발매 2LP 지금도 현역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존 트라볼타의 리즈 시절 디스코 LP https://www.youtube.com/watch?v=WmbuXJXArs8 john travolta let her in https://www.youtube.com/watch?v=Hmh7Kb2tUQM Moonlight Lady https://www.youtube.com/watch?v=gSAwZyqBoCo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1978년 당시 개봉된 영화 ‘Saturday Night Fever’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디스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영화의 주인공 존 트라볼타의 환상적인 디스코는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한국에서도 디스코 열풍이 일어나 디스코텍과 디스코 머리, 디스코 바지 등 디스코 열풍이 불었다. 그 시절 카세트 테입과 디스코는 청춘의 심벌이었다. 오랫동안의 군사독재에 짓눌려 왔던 한국인의 열정과 신명이 디스코를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했고, 신명나는 디스코 음악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디스코는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 4,50대에게 불꽃같은 추억을 남긴 디스코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디스코를 추었던 그 시절의 열정은 어디에 남아있을까? 디스코 스타, 디스코 DJ, 디스코 춤꾼, 그리고 7,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청춘들이 만나 디스코를 추억한다. 디스코 이전의 음악이 노래를 위한 음악이었다면, 디스코는 춤을 추기 위해 만든 음악이었다. 디스코의 강한 비트의 4박자는 심장이 뛰는 박자와 가장 유사하다. 인종과 계층을 불문하고 디스코를 들으면 흥이 생기고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디스코 열풍은 1978년 영화 ‘Saturday Night Fever’가 흥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Funky town(Lipps Inc), In the navy(Village people), Hello Mr. Monkey(Arabesque), I was made for dancin(Leif garrett), Gimme! Gimme! Gimme!(ABBA), Sexy music(Nolans) 등 주옥같은 디스코 명곡들이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디스코텍과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디스코 머리와 디스코 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밤새 몸을 흔들었다. 한국에서는 ‘YMCA’(조경수), ‘날 보러와요’(방미) 등 번안곡이 히트를 쳤다. 이어 ‘밤차’(이은하) 등 국산 디스코 음악이 선을 보였고 나미, 소방차, 김완선 등 댄스 스타가 등장했다. 디스코는 춤을 추는 대중이 중심이 된 음악이었다. 맨 처음 디스코텍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디스크, 즉 앨범을 틀어주는 곳이란 의미다. 록이나 고고의 경우 대중들은 뮤지션을 바라보며 응원을 하고 춤을 추었다. 그러나 디스코텍에서는 뮤지션이 배제된다. 오로지 앨범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싣고 대중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스코는 음악을 민주화한 장르이기도 했다. 1970년대 디스코의 중심은 무교동이었다. 카네기, 123, 싼다, 다운타운, 코파카바나 등 이른바 잘나가는 디스코텍이 밀집해 있었다. 디스코텍에서는 개인기가 뛰어난 춤꾼들이 자연스럽게 두각을 나타냈다. 디스코텍 업주들은 다투어 디스코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경연대회를 통해 디스코 스타들이 발굴되었다. 서병구, 정원관, 신철, 설도윤 등이 당시 장안을 주름잡던 디스코 춤꾼이었다. 디스코의 열풍과 함께 디스코를 틀어주는 DJ가 각광받았다. 이진, 한용진, 이세윤, 김창환, 신철, 유대영 등이 스타 DJ로 등장했다. 이들 DJ들은 대중의 기호에 맞는 디스코 음악을 발굴하여 히트시킨 주역이었다. 이후 1980년대 들면서 디스코의 중심이 이태원으로 넘어간다. 특히 문나이트(MOON NIGHT)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긋는 역할을 했다. 이주노, 양현석, 현진영, 박진영, 이현도, 김성재, 박철우, 강원래, 구준엽 등 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끈 젊은 춤꾼들이 ‘문나이트’에서 경쟁적으로 디스코를 췄다. 현재 세계에 진출하고 있는 한류 댄스 음악의 뿌리가 바로 디스코였던 것이다. 디스코 열풍은 80년대 롤러 스케이트장과 함께 절정으로 치닫는다.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롤러장이 생겼고, ‘롤러장’에서는 신명나는 디스코 음악이 울려 퍼졌다. 7,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롤러장’과 디스코는 잊을 수 없는 열정의 기억으로 남아있다.